1.


당신 앞에 서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



2.


「포터!」

격렬하게 나를 부르는 당신의 목소리가 얼마나 신경질적이고 날카로운지. 또 모순적이게도 그 어느 때보다 냉정하고 무심한지. 나는 안다.

내 성을 내뱉는 목소리에, 티끌만큼 작은 감정의 찌꺼기 하나조차도 없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3.


나를 보는 당신의 시선은 무척이나 껄끄럽다. 새까맣고 아무런 감정도 내비치지 않는 당신의 그 눈을. 론은 뿌옇게 흐려진, 죽은 생선 눈깔과 같다고 말했다. 론에게 긍정의 표시를 주었지만, 나는…. 사실은,

나락으로 가는 무저갱의 입구라고, 말하고 싶었다.



4.


쓰디쓴 독초와 괴랄 맞은 재료들, 습한 지하 감옥의 벽에 눌어붙은 눅눅한 곰팡이, 그리고….

스쳐지나가는 당신에게선 온갖 불쾌한 냄새가 잔뜩 풍겼다. 당신이 나를 향해 독설을 쏟아낼 때마다 맡아지는 그 역겨운 단내는, 정말 말 그대로 끔찍하기 짝이 없었다.

그래서 그 냄새들에 코끝이 찡하게 울릴 때마다, 나는 진저리를 쳤다.



5.


당신이 내게 닿아올 때면, 나는 무척이나 기분이 상했다. 당신은 단 한 번도 내게 스스럼없이 닿아온 적이 없었다. 그 재수 없는 말포이에게는, 손을 뻗는 것을 머뭇거리지 않으면서.

나를 끌고 가거나 내던질 때조차, 당신은 손이 닿는 부분에 옷이 있는지를 확인했다. 마법 약에 들어가는 그 괴상한 재료들을 맨손으로 만질 때도 찡그리지 않았던 미간을 한없이 찡그리고 또 찌푸리면서.



6.


나는 항상 당신이 싫었다. 그래서 당신에게 바라는 것도 없었다.


당신이,

다정하게 내 이름을 불러주는 것을 바라지 않았고.

따뜻한 눈길로 나를 바라봐주는 것을 바라지 않았고.

달콤한 체취를 풍기며 내 옆에 머물러주는 것을 바라지 않았고.

상냥한 손길로 내게 닿아오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7.


당신이 죽음의 끝에 전한 기억은 잔인했다.

기억속의 달콤함은 당신의 것이었다. 그만큼 처절한 고통도 모두 당신의 몫이었다.

내 몫은 그 모든 시간 속에 남겨진 진실의 찌꺼기였다.


알고 싶었다. 내게 죽음을 선고하면서, 당신은 무엇을 느꼈을까. 내 죽음을 확정짓는 덤블도어에게 분개한 당신은 정말, 내겐 단 하나의 감정도 없었을까. 가슴 깊은 구석에서 의구심과 기대, 알 수 없는 무엇인가가 아주 작게 솟아올랐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당신이 싫다. 당신이 밉고, 끔찍하고,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 없게 된다.



8.


어째서인지는 알 수 없다.

내가, 바라는 것이 생긴 것은.



9.


너무 많은 것을 잃어버린 승리에는 슬픔이 가장 먼저 앞선다. 그리고 숨을 돌릴 수 있는 약간의 여유가 따라붙는다. 살아남았다는 기쁨과 이겼다는 환희는 그 다음이다.


가장 마지막에 도착하는 것은 그리움과 알고 싶지 않은 공허다.



10.


당신 앞에 서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

당신이 없으면,

당신이 없는,


나는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







'씁니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총/19] 당신이 죽은 뒤에.(미완)  (2) 2015.06.17
[제스네]  (0) 2015.06.01
[시리스네]  (0) 2015.02.16
[해스네]  (1) 2015.02.16
[해스네] Les crimes de l'amour. (미완)  (4) 2015.01.17
by mint_mont 2015. 5. 16. 02: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