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유일한 무기이자 보호구인 지팡이를 뺏긴, 빼빼 마르고 비루먹은 망아지 같은 소년을 꿇리는 것은 쉬웠다. 저항하지 못할 만큼 강력한 힘으로 찍어 누르면 되는 것이었다. 또래 소년들보다 턱없이 마른, 가느다란 손목을 붙잡아, 부러트릴 것처럼 강하게 팔을 꺾어, 소년의 마지막 저항마저 억눌러 짓이겼다. 파르르 떨리는 마른 어깨와 바닥에 처박힌 까맣고 동그란 뒤통수에 기분이 날아갈듯 가파르게 올랐다가, 이내 다시 처참하게 곤두박질쳤다.


붙잡힌 손도, 붙잡은 손도 핏기 없이 하얗게 질렸다.



2.


“아버지?”


어린아이의 목소리는 티 없이 맑았다. 다만 붙잡은 손이 조여 오는지, 하얗게 질려가는 손과 제 아비의 얼굴을 번갈아 가며 쳐다봤다. 소년기의 앳됨을 더 이상 찾을 수 없는, 성숙한 청년의 얼굴을 하고 있는 남자는, 아이의 부름에 정신을 차린 듯 황급하게 자리를 벗어났다. 놀란 아이가 다시 남자를 불렀지만, 남자는 모든 것을 무시하고 나아갈 뿐이었다. 도망치듯 다급하게 떠나가는 남자를, 나는 차마 붙잡을 수 없었다.



3.


올려다보는 새까만 눈동자가 그를 꼭 닮아, 나는 살짝 몸을 떨었다.


전체적으로 나를 더 많이 닮아있었지만, 그의 것을 그대로 받은 것 같은 눈동자에 차마 계속 바라보고 있을 수 없을 만큼, …… 아파왔다.



4.


내가 저 아이의 나이 때는 어떠했더라, 하고 기억을 더듬어보게 만드는 아이였다. 대엿 살이나 되었을까 싶은 아이는, 제 아비를 닮아서 그런지 조금이지만 찬기를 흘리기는 했어도, 부모라면 누구라도 뿌듯해 할 만큼 얌전하고 어른스러웠다.


그래서 어쩐지 가증스럽게도 우쭐해지고 싶어졌다.



5.


나를 올려다보는 아이는 혼란스러워하는 것 같았으나, 아이의 얼굴은 어쩐지 조금 상기 되어있는 것 같았다. 아이는 자신이 아버지를 닮지 않은 것이 고민이라고 말했었음으로, 나는 그 혼란스러움과 기대감의 이유를 알아챌 수 있었다.


"이름을 알려줄 수 있을까?"


“…… 아돌푸스 스네이프 입니다.”


Adolphus Snape? 입안에서 굴려지는 이름이 껄끄러웠다. 이름부터가 무척이나 마음에 들지 않았다. 머글세계에서 전쟁을 일으킨 그 미친 스큅의 이름과 비슷한 것도 그러했지만, 그 이름이 가진 의미가 심기를 살살 긁어왔다. 나를 닮은 아이에게 내 친우를 떠올리게 하는 의미를 가진 이름을 준다. 의도된 것이 분명했다. 그, 그 소년, 그 남자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았을 것이다. 속이 좋지 못한 것이, 장이 베베 꼬일 것만 같았다.



6.


한 발짝 다가가면 제 아이를 끌어안고 두세 걸음 뒤로 도망갔다. 내 아이가 아니라고, 미친 것처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남자는 지팡이를 꺼낼 생각도 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이 처연했다. 부정하고 싶은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갔지만, 그렇다고 해서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아니, 어쩐지 화가 났다. 분명히 나와 그의 아이였다. 그 누가 보더라도 내 아이라고 말 할 만큼, 아이는 나를 닮았으니까. 그것을 부정당하는 것이 기분이 나쁘고, 그것을 부정하는 남자에게 화가 나고, 그가 미웠다.


남자를 밀어붙이는 일은 나에게 무엇보다 쉬웠다. 그를 포기시키는 방법을, 나는, 무척이나 잘 알고 있었으므로.


천천히 구석으로 몰아가, 더 이상 도망치지 못하게 사로잡았다. 막다른 곳에 몰린 남자는 쉼 없이 고함치던 입을 꾹 다물고, 아이를 안은 몸을 둥글게 말아 잔뜩 가시를 세우고, 그리고 언젠가 그랬던 것처럼 소리 없이 떨었다.

순간, 그 모습이 너무나 익숙해서,


아이는 시끄럽게 울어댔다. 남자는 아무 말도 없었다. 그리고 나는,


구역질이 날 것만 같았다.



7.


그러나 같이 있고 싶었다.



8.


뭐하는 거냐고 묻고 싶었다. 아이는 어디에 둔 것이냐고도 묻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그 무엇도 물을 수 없었다. 성급하게 닿아오는 입술이 데일 것처럼 뜨거웠다. 그만두라고 밀어내고 싶었지만, 시선이 마주친 눈에 숨이 막혔다. 숨이 막혀, 굳어버렸으므로, 그는 손쉽게 옷을 벗겨낼 수 있었다. 맞붙은 맨가슴이 차가웠다. 나는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메마른 손이 어깨를 더듬어왔고, 미끈한 혀가 입술을 가르고 들어왔다.


단 한 번도 그가 나를 먼저 바래온 적이 없었으므로, 나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아니, 이것이 거짓이라 해도. 무언가를 숨기기 위한 눈속임이나, 나를 파멸시킬 위험한 덫이라 해도.


정신을 차리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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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t_mont 2015. 6. 1. 04:11